고구려 역사: 고구려의 술과 무용총 벽화 속에서 답을 찾았다

고구려의 술 문화에 대해서 아시나요? 우리가 흔히 ‘고구려’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광활한 만주 벌판을 달리던 개마무사, 강력한 철기 문화, 혹은 동북아시아를 호령하던 정복 국가의 위엄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강인한 외면 뒤에 숨겨진 고구려인들의 잔치 문화와 풍류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신 적이 있나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무용총 벽화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1,500년 전 그들이 단순히 싸움만 잘하던 촉이 좋은 전사들이 아니라, 누구보다 삶을 즐길 줄 알았던 감성적인 존재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고구려의 술의 정체를 추적하다 보면, 현대의 우리와 놀라울 정도로 닮은 그들의 일상이 펼쳐집니다.

과연 벽화 속 고구려인의 술은 무엇이었으며, 그들의 잔치 문화는 어떤 비밀을 담고 있을까요? 지금부터 역사책이 미처 다 말해주지 못한 흥미진진한 고대인들의 라이프스타일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고구려의 술, 무용총 벽화 속 잔치 현장에서 포착하다

교과서에서 자주 보았던 무용총의 ‘접객도‘와 ‘무용도’는 당시 고구려 귀족들의 화려한 연회 모습을 그대로 박제해 둔 귀중한 시각 자료입니다. 이 벽화들은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 당대의 식생활과 사교 방식을 증명하는 일종의 ‘스냅샷’ 역할을 합니다.

첩첩이 쌓인 음식과 술상, 접객도의 비밀

무용총 무덤 칸 안벽에 그려진 접객도를 보면, 방 안에서 주인공이 스님 혹은 귀빈으로 추정되는 인물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들 앞에는 각자 독립된 작은 상(독상)이 차려져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상 위에 놓인 그릇들의 형태입니다. 높은 굽이 달린 접시와 깊은 사발, 그리고 무엇인가를 담아 따르는 주전자와 잔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상차림의 핵심은 바로 손님을 환대하는 ‘술’이었습니다. 고구려인들에게 누군가를 대접한다는 것은 곧 좋은 술과 가무를 베푼다는 것과 동의어였습니다.

가무가 빠질 수 없다, 잔치 문화의 완성과 무용도

접객도 옆으로는 5명의 무용수가 소매를 길게 늘어뜨린 옷을 입고 늘어서서 춤을 추고 있으며, 그 아래로는 7명의 악사가 앉아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구려의 고구려인들의 잔치 문화가 단순히 먹고 마시는 1차원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시각(무용), 청각(음악), 미각 및 후각(음식과 술)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종합 예술 형태의 연회를 즐겼습니다. 춤꾼들의 절도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동작은 술자리의 분위기를 한층 돋우는 역할을 했습니다.

벽화 속 주인공들이 마시던 술의 정체는?

그렇다면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 남습니다. 무용총 벽화 속 주인공들의 잔 위에 채워졌던 그 술은 과연 어떤 종류였을까요? 당대의 문헌 기록과 고고학적 유물을 바탕으로 그 정체를 역추적해 보았습니다.

중국 문헌이 극찬한 고구려의 ‘곡아주’와 발효 기술

삼국지 위서 동이전이나 수서 등의 기록을 보면 “고구려인들은 장 담그기, 술 빚기 등 발효 식품을 만드는 기술이 매우 뛰어났다”고 공통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구려인들이 즐겨 마셨다고 전해지는 대표적인 술로는 곡아주(麴兒酒)가 꼽힙니다.

곡아주는 누룩을 잘 활용하여 빚은 전통 발효주로, 오늘날의 막걸리나 약주의 원형에 가깝습니다. 만주와 한반도 북부의 추운 기후를 견디기 위해 고구려인들은 조, 수수, 기장 등의 잡곡과 쌀을 섞어 술을 빚었습니다. 이 술은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바디감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추위를 쫓고 혈액순환을 돕는 효능이 탁월했을 것입니다.

감미로운 과실주와 가야향의 유입

고구려의 술은 곡물로 만드는 것 외에도 주변에서 쉽게 구하기 쉬운 머루, 다래, 산딸기 등을 이용한 과실주도 즐겨 마셨습니다. 천연 효모로 발효된 과실주는 귀족들의 잔치에서 달콤한 디저트 주나 여성들이 즐기는 술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또한, 영토 확장과 활발한 무역을 통해 낙랑의 잔재나 서역에서 건너온 이국적인 제조법, 심지어 남쪽 가야 지방의 명주까지 수입해 마셨다는 기록이 있어, 벽화 속 주인공들의 술상은 생각보다 훨씬 다채로웠을 가능성이 큽니다.

고구려인들의 잔치 문화가 가진 독특한 특징 3가지

고구려의 연회는 이웃 나라였던 백제나 신라, 혹은 중국의 왕조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벽화와 사료를 통해 분석한 세 가지 핵심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독상’ 중심의 평등하면서도 엄격한 격식

무용총 접객도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주인공과 손님이 커다란 하나의 상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개인 상(독상)을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고구려 귀족 사회가 개인의 공간과 격식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음을 뜻합니다.

술을 따를 때도 큰 항아리에서 주전자로 옮겨 담은 뒤, 상대방의 잔에 정중하게 채워주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마주 앉은 이의 신분을 존중하면서도, 독상을 통해 각자의 음주 속도와 양을 조절할 수 있는 세련된 문화였습니다.

남녀노소, 신분을 초월한 대동(大同)의 축제

귀족들의 잔치가 무용총 벽화처럼 격식 있었다면, 일반 백성들의 잔치는 훨씬 역동적이었습니다. 고구려에는 ‘동맹(東盟)’이라는 거대한 국가적 제천행사가 있었습니다. 10월에 열리는 이 축제 기간에는 온 나라 사람이 밤낮으로 모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술을 마셨습니다.

“고구려 사람들은 노래와 춤을 좋아하여, 나라 안의 성읍마다 밤이 되면 남녀가 무리 지어 모여 서로 노래하며 즐긴다.” —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中

이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고구려의 고구려인들의 잔치 문화는 유교적 신분제나 남녀칠세부동석 같은 제약이 생기기 전의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공동체적 연대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고구려의 술과 가무, 그리고 무예의 결합

고구려인들에게 잔치는 단순한 유흥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술자리에서 흥이 오르면 자연스럽게 칼춤을 추거나 활쏘기 시합을 벌였습니다. 무용총 벽화의 수렵도가 보여주듯, 평소의 사냥과 전투 훈련은 잔치라는 축제적 공간에서 경연 형태로 승화되었습니다. 즉, 잘 마시고 잘 노는 사람이 전투도 잘하는 ‘문무 겸비’의 호방한 기상이 잔치 문화 전반에 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1,500년 전의 풍류가 현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무용총 벽화 속의 인물들은 긴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듯합니다. 퇴근 후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스트레스를 풀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정을 주고받는 우리의 ‘회식’이나 ‘파티’ 문화의 유전자가 이미 고구려 시대부터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독상을 차려 상대를 존중하던 귀족의 예법, 밤새도록 노래하고 춤추며 하나가 되던 대동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다소 자극적이고 폭음 위주로 변질한 현대 음주 문화를 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거울이 됩니다.

이번 주말에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고구려인들이 마셨던 부드러운 곡아주를 상상하며 막걸리 한 잔에 깊은 풍류를 담아 나누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벽화 속 주인공들이 누렸던 그 따뜻하고 호방한 기운이 여러분의 술상에도 그대로 전해질 것입니다.